기독교는 신(하나님 또는 하느님)의 성격규정상 '선'의 신의 존재조건으로 '악'과 악의 존재를 설정해요. 선의 하나님을 긍정하려면 '부정돼야 할' 존재로서의 '악'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이것은 '유일신'또는 '절대존재'라는 기독교 신의 규정이나 개념과 모순돼요. 따라서 그 신은 '다수의 신'들 중에 하나이며 '악'적 신에 대한 상대적 존재라고. 그런 까닭에 기독교가 '선'과 '정의'를 자처하는 한, 선과 정의가 '쳐부수고, 승리하고, 멸망시키고(시켜야 하는) 어떤 악적 대상을 설정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렇게 믿는 사람에겐 항상 전쟁이 필요하고 승리가 필요한 거요.
중세에는(지금도) 이슬람이 적이었고, 과학자들(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브루노 등)이 '적'이고 '악'이었으며, 다른 종교의 선량한 신자들이 '죽여버려야 할 이교도'였잖아요. 근대에는 '하늘나라'에서의 행복보다 현실적, 인간적 행복을 찾으려는 마르크스적 신념과 그 신봉자들과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와 제도(소련, 중공 등)가 악이었지요. 베트남에서는 83%의 대중적 지지를 받는 호지명과 베트콩을 마귀로 설정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칠레 정치사상 처음으로 완전한 민주주의 선거로 수립된 아옌데 대통령 정부를 악으로 낙인찍어, 살인마인 피노체트 장군을 부추겨서 '천사'의 쿠테타로 대량학살을 감행했어. 이어서 쿠바를 비롯한 10개의 지역 국가, 정부를 상대로 악마에 대한 천사의 전쟁을 감행했지 코리아반도에서 김정일이라는 마귀를 만드어 핵전쟁을 여러차례 계획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빈 라덴, 후세인이라는 악을 만들어내야 했지. 이것이 미국 '자본주의 기독교'의 '선악 전쟁'의 본질이오! 현재는 그 모든 전쟁대상들 다음으로, 다시 이슬람교와의 전세계에 걸친 조지 부시식 선, 악 결전이 필요해진 것이지.
기독교의 신학적 원리를 따르면, '악'이 없는 인류사회를 용납할 수 없어요. 전쟁을 할 구실이 없어지기 때문이지요. '증오'가 '사랑'보다 앞서는 가치인 거지. '악'적 대상이 없으면 만들어라도 내야 해.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집단이 강해질수록 미국이 전쟁을 해야 할 종교적 필요성은 증가하고, 인류가 겪는 재앙은 더욱 커질수밖에 없어. 그들의 목적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니까! (한길사. 대화. P 512-514)
우리나라의 경우를 말하면, (중간 생략) 그밖에도 경건한 하나님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속세의 비신도들에게까지 존경을 받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있어요. 하지만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 국민생활의 고난의 고비고비에서, 이승만시기도 그랬고 특히 박정희와 전두환의 반인간적 학정의 시대에, 하나님의 정의와 예수의 사랑을 위해서 군사독재에 대한 항거의 전선에 나와 비신도들의 대중적 투쟁과 뜻을 같이하고 더불어 행동한 기독교 신자는 전체 한국 기독교 신자의 5%도 안 됐다고 알고 있어요. 90%이상의 소위 '예수와 하나님의 제자들'이라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권리를 위해서 피 흘리는 수십만, 수백만의 비신자 대중의 아픔에 눈을 감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대시해 왔어요. (한길사. 대화. P 514-515)
버틀런드 러셀경. 그의 자서전의 한 구절.이 이상한 사실, 즉 어느 시기든 종교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독선적인 신앙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종교의 잔인성은 더했고, 상황은 악했습니다. 소위 '신앙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정말 철저히 기독교를 믿었는데도, 종교재판에서의 고문은 극에 달했습니다. 불행한 여성이 수없이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졌고, 종교란 이름으로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갖가지 잔학행위가 가해졌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도인이 아닌가?" 라는 장의 내용
세상을 돌이켜 볼 때, 여러분은, 인간감정의 털끝만한 발전도, 형법상의 조그마한 개선도, 전쟁을 억제하려 하는 어떤 방안도, 유색인종의 대우개선을 위한 어떤 대책도, 또는 노예제도의 완화나 이 세상에서의 어떤 도덕적 진보도, 모두가 세계의 조직화된 교회에 의하여 철두철미하게 반대되어 왔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인의 종교가 세계의 도덕적 진보의 으뜸가는 적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을 신중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한길사. 대화. P 515-516)


